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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12 1인칭 관찰자 시점 알바 이야기

1인칭 관찰자 시점 알바 이야기

2010/01/12 14:08

From 머핀

  신자유주의가 시작된 이후로 한국의 10대와 20대들은 이유를 막론하고 그 어느 때보다 노동 시장에 많이 뛰어들었다. 그러나 한국의 노동 시장의 상황은 십년 전과 비교해서 개선된 것이 전혀 없다. 법망을 교묘히 피해가며 노동하는 사람들의 기본권도 보장하지 않는 게 한국노동계의 현실인 것은 책을 통해서든 경험을 통해서든 이젠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나는 직장 체험을 하거나 사회 기관에서 인턴으로 일한 적은 있지만 친구들이 한다는 식당 알바, 편의점, 주유소, 커피 집, 바에서 일해 본 적은 없다. 그런 나에게 노동현장에 뛰어든 친구들의 알바 이야기는 그저 충격이기만 하다. 좋은 이야기는 열에 하나 정도가 다이며 들려오는 이야기의 절반은 알바 현장의 폐해들이다. 내가 지금 전하는 이야기들보다 더 충격적인 이야기도 훨씬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나는 그런 내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이건 관찰자 입장에서의 고발이며 동시에 비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이 글을 보고 자기 경험을 드러내서 사회에 알리는 일이 다른 곳에서도 일어나길 바란다.

  어느 날 친구 중 한 녀석과 밤에 전화 통화를 했다. 그냥 간단한 안부 전화였는데 오랜만에 전화를 하다 보니 긴 시간동안 하게 됐다. 그러다 대학 등록금 이야기와 경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다. 그 친구의 말인 즉 대출 받은 등록금을 생각하면 집 사정도 그렇고 걱정이 앞선다는 거였다. 우리 또래들 중에 그런 걱정 안 하면서 대학에 다니는 친구가 몇 이나 되나 싶었지만 막상 직접 들으니 짐짓 걱정이 되는 거였다.

  얼마 후 나는 다른 친구로부터 그 친구가 대학 앞에 있는 술집에서 알바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것도 저녁부터 해서 새벽까지 일한다는. 학기 중이어도 용돈 마련을 하나 싶어 그러려니 싶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걱정이 앞섰다. 학교에선 학교 일대로 시달리고 밖에 나와선 사방팔방 뛰어 다니며 정신없이 일을 하던(금전적 이익과 별로 상관도 없는) 그 친구에게 쉴 시간을 가지는 게 그리도 사치스러운 일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일을 하는 곳이 정확히 어딘지 알고 난 뒤에도 한참을 찾아가지 않았다. 바쁘고 정신없는 탓도 있었지만 아마도 찾아가기가 싫었던 것 같다.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나는 친구들이 아르바이트 하는 곳에 찾아가서 편했던 적이 별로 없었다. 심지어 찾아 가지 않고 듣기만 해도 불편해져서 근처에도 가기 싫은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임금 체불은 기본이고, 근무 시간이 아닌데도 불러서 일을 시키고, 끝나고 가야 할 시간에도 일을 시키는 곳도 있었다. 사정이 생겨 일을 일찍 그만두게 되자 시급을 약속한 것보다 깎아서 계산해준 곳도 있었다. 그것도 노동법을 슬며시 피해가도록 현금으로 주면서. 좋은 곳에서 일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정말 보기 드문 존재들이었다.

  그래도 친구가 일을 한다니 한 번 가보긴 해야 해서 소식을 들은 지 몇 개월이 지난 뒤 찾아갔다. 주인장이 좋은 사람이고, 일을 한지 시간이 꽤 흘렀으니 자리 잡혀서 적응해서 잘 지내고 있었으면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은 체 가게에 들어갔다. 그런데 하필 그날은 친구가 없는 날이었다. 이런 쒯. 겉으론 전혀 상태를 알 수 없는 음악 들으면서 술 마시는 집이었기 때문에 “내일 온다.”는 이야기만 듣고서 나왔다.

  며칠 뒤 나는 다른 친구와 약속이 있어 볼 일을 보고 나서 집에 가는 길에 다시 그 친구가 일하는 곳으로 향했다. 녀석은 짐짓 반가운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생각보다 나쁘진 않나 싶어서 내심 기쁘게 생각하며 빈자리에 가서 앉았다. 친구는 좀 있다가 나한테 기본 안주를 갖다 주고 메뉴판을 갖다 준다고 왔는데 갑자기 나한테 지금 사장님 기분이 안 좋다며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나랑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오래 하기가 그렇다는 말을 슬며시 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얼마 전에 일을 그만 둔다고 했더니만 그걸로 사장이 화가 나있다는 것. 쓰고 싶을 때 막 쓰고 자르고 싶을 때 막 자를 수 있는데 왜 알바가 그만 두겠다는 걸 괘씸하게 여기는 건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지만 그렇다니 일단 알았다고 그랬다.

  나는 행여나 사장이 내가 아부를 하면 기분이 조금 풀릴까 싶어 칵테일이 맛있다는 둥, 여기 라이브 영상도 틀어주고 해서 너무 마음에 든다며 다음에 또 와야겠다, 지금 나오는 음악 밴드 이름이 뭐냐며 온갖 헛소리를 해댔다. 친구를 대하는 태도는 이미 낙제였지만 딴 거라도 괜찮았기에 그런 말이라도 한 것이지만 그래도 여기엔 심각한 가식이 담겨져 있었다. 물론 이게 별로 효과는 없었던 것 같다.

  원래 나는 그냥 술 한 잔 마시고 친구 얼굴이나 보다가 오려고 했지만 가만 있어보니 친구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사장이 무슨 소릴 할까 싶기도 했고(물론 욕 몇 마디를 못 버틸 인물은 아니지만), 혼자 하기엔 벅차 보일만큼 많은 테이블 서빙에, 얼굴에 “나 너무 피곤해.”를 써놓은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같이 있으면 그래도 힘이 되 줄 뭐라도 있지 않나 싶어 가방 안에 있던 책들을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읽다가 지겨우면 음악 신청을 하고 여유롭게 음악 감상을 하며 오며 가며 이야기도 잠깐씩 하면서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지켜보니 이 가게는 골 때리는 곳이었다. 가게 크기가 그렇게 크지도 않았지만 한 사람이 서빙하기엔 힘든 곳이었기 때문이다. 새벽 1시가 넘자 테이블이 다 차서 들어왔다가 나가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보였는데 그 많은 테이블을 녀석 혼자 서빙하고 있는 것이었다. 왔다갔다 정말 정신없어 보이는 와중에도 친구는 웃으려고 애 쓰며 웃고 있었다. 하지만 붙는 치마에 구두까지 신고 다다다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 자못 안쓰럽기만 했다. 나는 친구가 굴러다는 걸 보고도 음악 이야기나 칵테일 맛에 대한 찬양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몇 시간이 흘러 드디어 마감 시간이 됐고 사람들이 하나 둘 빠져 나가고 술집엔 사장하고 나하고 친구 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드디어 가겠다 싶어 보던 책들을 가방에 집어넣고 “와, 이제 끝나는 거지? 고생했다야.”라고 친구를 토닥였다. 그러나 친구는 아직 멀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사장님이 가라고 해야 갈 수 있다.”는 말을 힘없이 들려줬다. 나는 무슨 소린가 싶어 다시 자리에 앉아 친구를 지켜봐야했다. 마감이 만약 4시라면 3시나 3시 30분부터는 마감 준비를 해서 4시에 가게 만들어 줘야 하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4시에 끝나고 나서 마감 준비를 시키는 것이었다. 그렇게 마감하는데 30분이 넘게 걸렸고 그러고 나서야 사장은 마지못해 친구보고 가도 좋다는 이야길 했다.

  그때 시간이 첫 차가 나오기 한 시간 전쯤이어서 택시를 타야 했다. 그 비용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친구가 자비로 계산해서 가야 한단다. 너무 황당해서 웃음이 나왔다. 새벽까지 죽어라 일하고 집으로 돌아갈 차가 없는 것이 왜 얘의 책임일까? 왜 힘들게 번 돈을 집에 돌아갈 때 쏟아 붓고 나면 남는 것도 얼마 없는데, 그럼 이 사장 새끼가 얼마나 낮은 임금으로 친구를 고용하고 있는 건지 계산하면 열 받을 거 같아서 안 해버렸다. 밥을 주나, 쉴 시간을 마련해주나, 마감 시간 넘겨서 일하면 추가 수당을 주길 하나, 다른 알바를 고용하나 뭐 하나 하는 것도 없이 칵테일이나 만들고 음악이나 틀고 앉아 있으면서 친구를 그따위로 대한 걸 생각하니 듣다가 실소를 터뜨리지 않고 뭐 어쩌겠나. 그렇다고 지친 친구 앞에서 화내면서 욕 할 수도 없었다. 보통 같았으면 그랬겠지만 그 날은 정말 같이 욕 하는 것도 지쳐보였다.

  나는 일터라는 곳이 기본적으로 자신의 노동력의 가치를 정당하게 인정받아야 하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곳은 내가 일을 배우는 곳이기도 하지만 학원은 아니다. 그러므로 내가 거기서 새벽까지 일하고 집에 갈 수 없는 형편이라면 당연히 임금이 높던지 아니면 임금과 별개로 교통비를 줘야 하는 게 당연 한 거 아닌가? 도대체 사장이란 작자는 무슨 생각일까? 집이 택시를 타야 할 만큼 먼 데 이곳에 와서 일하는 사람의 잘못이라 이건가? 그러면서 그만 둔다니까 화나서 친구가 일하는 내내 정색하고 있는 건 도대체 뭔지. 왜 우리는 맘대로 일도 못하고 마음대로 그만두지 못하면서 까라면 까야 되고, 나가라면 나가야 되는지 모르겠다. 이건 노동법이고 뭐고 찾고 따지기 전에 기본 적으로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 아니라 중세시대의 지주와 농노의 모습과 뭐가 다른지 알 수가 없다. 누군가 나에게 차이점을 설명해주기 바란다.

친구는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 택시 타러 가는 길에 어떤 계단에 걸터앉아 잠깐 쉬었다 가자 그랬다. 그 짧은 10여분의 시간 동안 나는 사회에서 업신여김 당하며 발기발기 찢기며 상처 입는 우리 또래들의 모습을 보았다. 슬픔을 본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냥 힘들어 죽겠는데 몇 시간 쉬지도 못하고, 늦어도 10시까진 강의 들으러 학교에 가야 한다는 이야길 들어 주는 거 말고는 없었다. 녀석은 너무 힘이 들어 울어 버릴 것만 같았다. 한 번도 우는 걸 본 적이 없었는데.

다음에 밥 먹으면서 이야기나 하자며 같이 있어줘서 고마웠다며 택시에 타던 친구한테 난 뭐가 그리 고마운 일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 손에다 택시비나 쥐어 줬다면 그런 마음이 덜 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그깟 돈이 뭐라고, 그래도 없으면 죽는데 라며 10시에 수업인데도 일을 하는 친구를 보니 마음이 무겁다 같은 문장 따위론 감정 표현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친구는 지하철 안에서 상모를 돌리다가 수업을 들으러 갔겠지. 그것도 모자라서 수업 시간에 졸았을 수도.


아 뭐, 이젠 멀리 있는 남 이야기도 아닌 것 같다. 난 그게 무서웠다. 우리가 이렇게 사는 걸 당연하게 여길까봐. 그런데 벌써 그렇게 된 것처럼 보인다. 라면 가게에서 임금 체불을 당하고도 세상이 그렇다며 화나서 길길이 날 뛰던 나를 도리어 달래던 친구도 그랬고, 왼손잡이라서 저지른 몇 가지 실수로 하루 만에 식당에서 잘린 친구, 전단지 다 돌리고 갔더니 어디다 버린 거 아니냐며 제 값을 다 쳐주지 않아서 황당했다는 친구. 우린 이제 이런 일이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왜 제 시간에 일마치고 집에 오는 곳이 좋은 곳에서 일한다는 소리를 들어야 할까? 언제까지 이럴까? 집까지 걸어와서 보니 시간이 꽤나 흘렀고 너무 잠을 안자서 인지 잠을 잘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은, 나도 일을 하러 가야 해서 지금 잤다간 일을 하러 갈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by Leo Reynolds



From 머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