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회에서 나는 친구가 바의 열악한 근무 환경을 무릅쓰고 일하는 걸 보고 화를 냈었다. 그런데 친구로부터 뜻밖에도 “사장님이 나를 나쁘게 대한 건 맞지만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어서 그랬다고 생각하진 않아. 그래서 가게에 한 번씩 찾아 가서 인사도 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의 삶이라는 건 아이러니 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본 게 전부는 아니 것이며 어느 순간엔 좋았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이 친구와는 또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친구 녀석과 이야기를 했다.
by titicat
“씨X 놈의 샤브샤브 집......... 내 스무 살 여름은 샤브샤브 국물로 얼룩졌어.”
“왜? ;; 일하는 곳이 어땠기에?”
집에 내려온 이후로 나는 사실상 직장을 잃은 상태였다. 밥통이 내 유일한 ‘밥줄’이었다. 그래서 인터뷰 상대를 끊임없이 구해야 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아무 친구나 붙잡고 물어도 일을 안 해본 친구들이 거의 없었다. 문제는 이번 프로젝트의 목적대로 우리 세대의 이야기를 사실 그대로, 그리고 사태의 심각성을 전해야 했기에 심도 있는 이야기를 찾아야 했다.
친구 녀석이 일했던 때는 여름이었고 대학교 방학 시즌이었다. 빌어먹을 놈의 태양이 내 피부를 병들게 만들어 세브란스 병원에 20만원이 넘는 병원비를 부은 시즌이기도 했고, 역대 최악의 폭염이라는 기념비 적인 수치를 찍었을 때였다. 날씨가 이 모양인데도 방학 때 돈을 벌겠다고 식당에 일하러 갔던 친구. 사실 녀석은 이때가 처음 알바가 아니었다. 이미 고등학교 때 호텔, sea food 레스토랑, 미술학원에서 일을 했었고 지금도 가끔씩 미술 학원에서 일을 하고 있단다.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인 샤브샤브 집에서도 잠깐.
욕부터 하고 시작된 대화는 곧바로 “사장님........”으로 시작하더니 “아니다. 이젠 사장도 아니지.”로 이어졌다. 친구 말에 따르면 사장님(이하 사장)은 하루도 안 빼놓고 자기를 더러 멍청하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일하면서 겪었던 가장 황당한 스토리를 이야기 해줬다.
“복날인데 난 혼자였어. 돈 아끼려고 알바를 나만 쓴 거야. 서빙은 나 혼자하고 하필이면 그날 같이 하는 아줌마는 휴일이었거든. 사장은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고 있더라고. 나는 씨X 대학에 와서 공부를 했는데 이건 지금 뭐하는 건가 싶더라고. 화장실 가서 펑펑 우는데 어떤 언니가 따라 들어오는 거야. 나보고 조선족이냐고 묻더라. 저 사장 엄마냐고 얼마 받고 일하냐고 자기가 봐도 사장이 심해서 나갈 때 한소리 한다고 날 안아줌...........”
이건 일터의 모습이라기 보담도 무슨 시트콤에 나올 법한 혹은 블랙코미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과 더 비슷해 보였다. 사실 대화중에 친구도 웃었고 나도 보면서 채팅창에 뭔가를 입력하지 않고 웃었지만 그냥 웃는 거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였다. 지나간 악몽을 나쁘게 추억하지 않기 위함이랄까. 너무 어이가 없기도 하고 말이 안 되니 믿기지도 않고 그런데 진짜 일어난 일이기도 하고.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실소가 터져 나왔다.
“복날인데 너 혼자 일을 시켰다고 ? 얼마나 넓은 식당이었는데 ? ;;”
“테이블이 22개 정도 되는 식당이었지. 그것도 씨,....... 오이지에는 국물 부어야 되고, 김치는 썰어 나가야 되고, 망할 샐러드는 춘권 잘라서 소스 뿌려 나가야 되는데 스페셜이면 과일까지 얹어야 된다고! 생각하니까 빡친다.”
“평소에도 그래?”
“평소에 잘해줬으면 내가 울었겠냐? 매일 나한테 멍청하다고 소리 지르고 나 이런 생각하면 안 되지만 사장보다 내가 배워도 더 배웠는데 썅.”
“일하면서 그렇게 돌아버릴 거 같은 순간이 많은데도 참기만 했어?”
“야! 내가 고용자냐? 난 그러다 잘렸지. 왜 잘렸게? 이거 쓰면 너 다음 글 분량 채우고도 남겠다. 아주 어이없게 잘렸는데.........”
“이야기 좀 해줘봐.”
“같이 일하던 서빙 하던 아주머니의 어머니가 상을 당하셔서 휴가를 가신 거야. 난 그 전날까지 초과근무를 했지. 근데 다음 날 가게 갔더니 날 잘랐어.” (녀석은 이 말을 마치고서 채팅창에 연신 “ㅋㅋㅋㅋㅋㅋㅋㅋㅋ”을 연발했다.
“장사를 못하니까. (이러고 또 큭큭 거리며 웃더니) 씨뱅.. 그때는 짜증났는데 지금은 뭐 잘 됐다 싶어.”
“장사를 못해서 널 잘랐다고?”
“장사 못하지. 사장이 뭘 할 줄 알어? 사장이랑 나랑 둘 만 있는데 나는 서빙만 할 줄 알고 ㅋㅋㅋㅋㅋㅋ”
“결국 자기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려다가 닫아야 했던 거네.”
“사장 욕하려면 하루 이틀 가지곤 안 되는데.......... 직원들 밥 먹을 때 자기는 돌솥 밥 먹고, 우리는 씨.......... 식당 밥 먹고, 사장 있으면 우리 계란 프라이에 김치에 밥 먹었어. 없으면 주방아줌마가 해물 볶아줌.” 녀석은 해물을 볶는 게 매우 통쾌한 복수라는 듯 ㅋㅋㅋ를 연발했다.
“ㅋㅋㅋㅋㅋㅋ 왜 그렇게 삼엄해.”라며 왜 일하고 나서 밥 먹는데 눈치를 보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녀석은 “니가 알바 해 봐. 시키야.”라는 말로 일축해버렸다. 점심때마다 전국에 아르바이트생을 쓰는 식당을 모두 돌아보며 식사 상태를 확인할 순 없지만 적어도 내가 봤던 곳은 같이 일하고 식당에서 크게 요리 하나를 하고 반찬들과 함께 먹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친구 말로는 그건 본사에서 월급을 주는 곳이거나 좋은 곳들이나 그런 거란다.
친구는 술집에서 일했던 친구와 다르게 아직도 눈썹 문신한 아줌마가 싫다고 한다. 식당 사장이 눈썹에 문신을 해서란다. 퇴근 시간이 되도 가란 이야기도 안 했단다. 돈도 달라고 해야 주는 그곳이 너무 싫다고. 무엇보다 괴로웠던 건 식당 사장의 언어폭력이었단다.
“언어폭력이 제일 짜증났지. 자꾸 씨 나보고 멍청하다고 손님들 앞에서 소리소리 질러댔거든. 나 안 멍청해 썅! 나 주6일 근무였는데 욕 안 먹은 날이 손에 꼽아. 씨.. 근데 내가 일을 또 못했냐면 그런 것도 아니야. 다른 아줌마들은 다 우리엄마 부럽 댔다고. 이런 성실한 딸 둬서.......... 근데 썅. 사장만.........”
“사장한테 찍힌 거 아니야? 뭐 하나 잘못 걸려가지고........”
“아니야 사장 원래 그랬데. 처음 일할 때 아줌마들이 사장 욕 한바가지 했었어. 사장 원래 저러니까 상처받지 말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장이 없다고 하면 일할 때 힘들었던 건 없어?”
“주문 밀리는 거랑 사장 데려오라는 게 제일 힘들었지. 애들 데려와서 방임하는 것도 힘들어. 커피 셀픈데 왜 안 주냐고 따지는 사람, 금연이라서 금연이라고 말하면 저년이 싸가지가 없다. 뭐 이런 것들?”
“근데 이런 것들은 사장에 비하면 밥이라 이거지? 너 하루에 얼마 받고 몇 시간 일했어?”
“하루에 네 시간씩 시간당 4500원씩 받았어. 일하는 동안 상냥하게 말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어.(웃음) 손님은 한번 보고 말거고 성격은 랜덤이거든. 그 화장실 따라 들어온 언니처럼 착한 손님도 많아. 사장은 그냥 말하는 습관이 퉁박 주는 사람 있잖아. 그랬어. 예컨대 뭐......... 내가 사장님 마감인데 손님 오셨는데 어떡할까요? 너는 생각이 없니? 이런 거?”
“다른 사람들한테도 그랬어?”
“응. 근데 나한테 제일 심했지. 주방아줌마 홀 아줌마는 자기랑 동년배니까.”
“그렇구나. ;; 그럼 좋았던 점은 없었어?”
“응 홀 아줌마랑 주방아줌마는 나 예뻐 하셨어. 홀 아줌마는 나한테 학교 물어보더니 자기 아들 좀 봐달라고....... 근데 우연히 그 아들이랑 나랑 같은 고교 선후배인거야. 아줌마들이 매일 나 먹을 거 챙겨주고 그랬어. 유독 사장만 성격이 거지같아서..........”
“그래도 그런 거라도 있어서 다행이네 ;; 왜 유독 사장만 너한테 못되게 굴었을까? 돈은 제대로 받았어? 왜 근데 돈 받는 걸 네가 달라고 해야 주는 건데?”
“돈은 제대로 받았지. 내가 돈 못 받고 사는 성격은 아니야.........”
“너도 혹시 일 끝났는데도 가라고 안 하면 못 가고 있고 그랬어? 전에 다른 친구가 그런 거 보고 말이 되나 싶었는데 ......”
“말 되지. 못 갔는데.”
“왜? 그럼 너도 뒤에 청소하고 온갖 잡일 다 시키고 30분 넘게 있다가 가라고 해야 갈 수 있는 거야?”
“마감 조잖아. 30분까지 있지는 않았고 한 십 여분 눈치 봐야 됐어. 여기서 한 달 일하고 나서 얼마 안 되고 잘렸어. 그렇게 오래 있지도 않았지 뭐.
여기랑 다르게 미술학원에서 일할 때는 되게 좋았어. 시간 당 거의 만원씩 받으면서 서류 전달이나 처리 같은 거 하고 시험 감독 같은 거 하면 일당으로 5만원씩 받은 적도 있었거든. 밥도 사주시고......... 가끔씩 찾아가면 일 주시기도 하고 밥도 사주시고 그래.”
샤브샤브 집 사장도 원래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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