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벌써 2010년 첫 태양이 밝아온 지도 2주일가 되어가는 날이라는 사실이 하나도 실감이 안 난다. 이 글을 읽는 녀러분이 만일 학생이라면 지금은 아마 겨울방학의 여유를 한창 만끽중이겠지. 그러나 여긴 상황이 다르다. 난 오늘과 어제 그랬듯이 내일도 학교에 얼굴을 들이밀어야 한다. 설마 일본까지 가서 계절학기 듣냐고? 어우 천만에요. 아쉽게도 여긴 벌써 겨울방학이 끝났다. 일본의 겨울방학은 1월 1일을 즈음해서 에누리 없이 일주일 정도. 이후 2주 정도 수업을 더 하다가 기말고사를 보는 시스템이다. 그 말인즉, 바로 지금이 우리 학교 시험기간이라는 소리. 애초에 1월 1일이 지나면 칼같이 다음 연재분을 써올리려고 했는데, 시험기간이라 공부하느라고 늦어졌다, 고 핑계 대면 믿어주실텐가 여러분. 하여간 귓불을 쐐액 후려치고 지나가는 겨울바람을 일주일쯤 더 참으면 무려 두달여에 육박하는 ‘봄방학’이 도래한다니 그저 그분이 오시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한국이 3월 초에 개학 내지 개강이라면 일본은 그보다 한 달 늦은 4월에 새학기가 시작한다.)
잡담이랑 핑계는 이쯤에서 그만두고, 한국이야 구정을 쇠니(이 자리를 빌어 괜한 참견 하나 하자면 설은 ‘세는’ 것이 아니라 ‘쇠는’ 것이다.) 1월 1일에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하고 단체문자 보내는 수준으로 평화로이 지나갔겠지만 여기는 아주 난리가 났었다. 이미 예고했던 바, 거리의 쇼윈도는 전부 Sale 사인으로 도배를 해 옷이 안 보일 정도고, 거리로 쏟아져나온 도쿄 시민들은 장단을 맞춰 열심히 돈을 썼다. TV에선 온갖 연예인들이 나와 새해를 축하하는 가무를 펼치는데, 70명 정도가 한꺼번에 무대 위에 등장한 AKB48(일본의 소녀 아이돌 그룹)를 볼 때는 지금 내가 보는 게 음악 프로그램인지 전국체전 매스게임인지 잠시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한편, 기숙사 친구들의 절반은 1월 1일 0시 정각에 메이지신궁이나 아사쿠사에서 울려퍼지는 북소리를 듣기 위해 밤 샐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외출을 했다. 물론 나도 궁금하긴 했지만, 사람으로 미어터질 게 뻔한 곳에 가서 한없는 기다림으로 정초를 맞이하고 싶지는 않아 얌전히 포기했다.
그렇다면 과연 일본 전역의 모든 인간 개체들은 정초를 맞이해 쇼핑을 하거나 TV 앞에 앉아 있거나 새해 첫 오미쿠지(토정비결같은 것)를 사기 위해 신사 앞에 줄줄이 늘어서있는가하면 사실 그렇지만도 않다. 정초를 맞이해 그 누구보다 바쁜 사람들 중에 오늘 특별히 힘줘서 소개할 용사들은 하로와쿠(ハローワーク)의 용사들이다. 하로와크? 새해도 밝았으니 모처럼 추리력을 좀 발휘해보자. 힌트는 일본인의 영어발음을 고려하는 것. 하로.. 할로..? 핼로? 옳거니, 하로는 필시 Hello다. 그럼 와쿠는? 장음이 있으니 와-쿠. 와-크? 워-크? Work! 그렇다. 하로와쿠는 Hello Work의 일본식 표기. (지금부터는 편의상 한국어식 외래어표기를 따라 헬로워크라고 하자.) 헬로워크의 정식 명칭은 ‘공공직업안정소’로, 일본 국민에게 안정된 고용기회를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후생노동성설치법 제23조에 기초해 국가(후생노동성)가 설치한 행정기관이다. 헬로워크라는 애칭은 공모에 의해 1990년부터 사용되었다. 한국에서 비슷한 기관을 찾자면 고용지원센터쯤 되겠다. 2008년 기준으로 일본 전역에 걸쳐 총 592개소가 운영되고 있다.(우리나라에서는 2010년 현재 전국에 72개의 고용지원센터가 운영중이다.)
헬로워크에서 하는 가장 주된 일은 직업 상담이다. ‘무슨 일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내지는 ‘분야는 막연하게나마 정했는데 어떻게 해야 그 일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등 구직에 관한(물론 구인에 관해서도 있지만 구직의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다양한 질문에 상담하고, 구체적으로 원하는 일을 찾았을 경우에는 그에 관련된 실질적인 일자리를 소개한다. 뿐만아니라 그 일을 하기 위해 먼저 필요한 기술이나 능력을 갖추기 위한 세미나나 지원, 구체적으로는 구직활동 시의 서류 준비나 면접까지도 세세하게 상담하고 돕는다. 성과도 상당하다. 지금까지 헬로워크를 찾은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가 원하는 일 내지는 그에 준하는 일을 얻어 왔다. 한국 검색포탈에서 ‘헬로워크’ 내지 ‘핼로워크’를 키워드로 검색하면 관련된 이런 기사도 나온다.
정초부터 꿀꿀한 얘기 하기는 싫지만 그래도 인정할 건 인정하자. 취업대란이라는 말에서 난 그 어떤 새로움도 느끼지 않는다. 비슷한 말로 지구온난화, 에너지고갈, 가정붕괴 등이 있다. 정말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임에는 틀림없는데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기 때문에 단어만으로는 실지로 몸에, 피부에 느껴지는 압박감이 전혀 없는 아주 ‘친근한’ 문제들.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나서-이 말은 자기 생활에 직접적인 위협이나 강제에 가까운 압박을 받고 나서야- 그제야 후닥닥 ‘어쩌면 좋아~’하고 전전긍긍하게 되는 문제들. 여러분이 10대라면 취업대란이라는 말은 아직 지구온난화랑 비슷한 레벨로 느껴지겠지만, 나처럼 대학교 4학년생쯤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고 3에게 ‘수능’이나 ‘대입’이란 단어들이 갖는 무게감 정도 상상해주시면 되겠다. 취업대란은 먹는 것도 아니고 사회 시간에 시험문제로 나올..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서 취직을 못 하는 사람들이 많은 지금 상황을 난리 난자 써서 나타낸 명사다. 우울하게도, 이 말은 일본에서도 참으로 자주 쓰이는 말이다.
해서 일본 후생노동청에서는 연말연시를 맞아 노세노세 하는 대신에 취업대란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해 특별한 선물을 마련했더라는 것이다. 이름하야 ✭비정규직노동자 등을 대상으로 한 연말특별상담✭. 연휴기간인 12월 29일과 30일,각 지역의 헬로워크는 일자리를 찾으러 온 사람과 찾아주려는 사람들로 시부야109의 인기만점 옷가게보다 더 북적였다고 한다. 뉴스에 의하면 가나가와현 요코하마 헬로워크의 방문자수가 작년의 2배 이상에 달했다고. 도쿄 신주쿠에 있는 헬로워크의 경우에는 1월 3일까지 쉬지 않고 생활이 곤란한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연말연시생활총합상담을 실시했는데, 여기서는 직업상담에 그치지 않고 건강, 주택상담에 더불어 특별히 숙식까지 제공했다는 훈훈한 소식이다.
새해를 맞아 헬로워크에서 오조니(우리나라로 치면 떡국같은 일본의 새해음식)를 먹는 구직자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분명 그 한 끼의 식사에는 ‘다시 일할 수 있다’는 희망의 맛이 진하게 담겨있었을 거라고 믿고 싶다. 올해 연말연시에 헬로워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내년 이맘때쯤에는 가족들과 함께 쇼핑도 하고 TV도 보고 신사참배도 하며 즐겁게 보낼 수 있기를 바라며, 난 시험공부하러 가야쓰겠다.
자료 출처
위키피디아 http://ja.wikipedia.org/wiki/公共職業安定所
헬로워크 공식홈페이지 http://www.hellowork.go.jp/
일본 후생노동성 홈페이지 http://www.mhlw.go.jp/index.shtml
최종접속시간 2010년 1월 13일 22:00
'"밥통"의 20대들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철없는 20대의 벤또통신(2)] 정초에 제일 바쁜 건 누구? (2) | 2010/01/15 |
|---|---|
| [철없는 20대의 벤또통신(1)] 인트로덕션 (4) | 2009/12/28 |
| 이글루스에서 키워드 '10대 알바'로 검색을 하니 (1) | 2009/06/2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