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가 직장이 될 때-
고담
자금을 모으다
2주전부터 치밀하게 짜여 진 계획이었죠. 집에 있는 돈도 모으고 원동기면허도 땄죠. 오토바이 말입니다. 고1 생일 지나면 딸 수 있습니다. 원동기면허는 그날에 필기 실기 다 할 수 있습니다. 빠르고 간편하지요. 여기저기 알바 자리도 알아봤지요. 아는 선배한테도 물어보고 인터넷에서도 보고 직접 찾아가 보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자퇴를 하거나 공고를 간다고 했는데 엄마가 자퇴는 절대 안 되고 공고도 절대 안 된다고…. 무조건 인문계에 있어야 된다고. 그게 시작이었죠.
2주 동안 모은 게 29만원이었습니다. 내 용돈 19만원하고, 10만원은 뭐 판 거.
-29만원? 용돈을 그동안 모아 놨던 거야?
아니. 그건 아니야.
-설마 2주 용돈이 19만원이라는 건 아니겠지.
아니, 나 한달에 30만원인데 그때 딱 19만원 있었어.
고1 6월달? 그 즈음부터 그렇게 받았습니다. 그러니 그전까지는 알바 할 일도 없었죠. 근데 집을 나갈려니까 이곳 저곳 물어보게 됐죠.
-가만 있어도 한달에 30이나 쥐어주는데 집까지 나가?
엄마가 막무가내여서 어쩔 수 없는 최후의 수단이었지. 그리고, 한달에 30만원 받으면서 살아왔으니까 나갈 수 있는 거지. 몰랐으니까.
치밀한 계획이자 충동이었죠. 준비는 차차 해놓다가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한번 뻥 터트려서 나가게 된 거니까요.
도련님, 짱깨 입문
가출하면 주유소알바? 그건 주유소에서 잘 수 있어서 그럴 겁니다. 주유소알바 짜요, 배달이 제일 많이 벌죠.
짜장면 배달이었습니다. 아침 10부터 저녁 9시까지였습니다. 무지 힘이 드는 일이죠. 첫 달에 140 받았는데 만족 못 하죠. 몸이 엄청 상했으니까요. 지금도 겨울에 뼈가 시려요. 그때 찬바람을 너무 많이 쎄서. 겨울이었어요. 제 생일이 11월 13일이라서요. 면허 14일에 따고 16일날 나갔으니까요.
처음엔 전화가 하루에 30통도 넘게 왔었어요. 나중엔 문자 한 시간에 10통 오고 전화 오고 그랬죠. 엄마가 다 이해하니까 집 들어와서 애기하자고 주로 이런 문자였죠. 딱 37일 만에 들어갔죠. 그때까지 한 번도 연락을 안 드렸죠.
뭐 하나 음식을 잘못 갖고 오거나 그럼 다시 가서 가져 오기도 하죠. 단지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인데 음식을 잘못 가져갔단 이유로 면발이 불었다고 사장한테 욕을 얻어먹었죠. 저의 실수이긴 했죠. 확인을 안 한 거니까. 음식을 넣은 사장도 잘못이 있기도 했지만…. 전 암말도 못 했죠. 전 돈 받고 고용되는 일개 알바였으니까요.
-그러니까, 사장이 실수한 걸 못 발견한 거. 그게 너의 실수란 거야?
그쵸. 많이 서러웠죠. 돈 받고 하는 거니까 참았지. 가출이 아니었으면 하지도 않았죠. 쪼금 후회됐죠. 뭐 하는 짓인지. 내 인생이 어떻게 될지….
늦게 나오면 늦게 나온다 지랄, 배달 늦게 갔다 오면 늦게 갔다 온다 지랄. 아마 제일 어리니까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일하는 형이 두 명 더 있었는데 형들한텐 안 그랬거든요. 월급은 똑같이 받았습니다.
유난히 집에 돌아가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일하다가 너무 힘들 때. 너무 추워서 손발이 꽁꽁 얼었을 때. 그럴땐 엄마가 그렇게 보고 싶습니다. 근데 미안하니까 집에 안 들어가고 버텼죠.
웅크려 자고, 먹고
처음엔 거기 일 하는 형네서 잤죠. 네, 공짜로 잤습니다. 잠만 자는 거였으니까요. 그 다음엔 모텔 가서 잤죠. 모텔 비쌌죠. 3만원이었는데 아줌마와 상의를 하고 일주일에 10만원에 애기를 했더니 된다고 했죠. 사람이 없다고.
밥은 아침점심저녁 다 가게에서 줬습니다. 따로 사먹은 건 군것질 거리밖에 없었습니다. 생활비라고 그렇게 많이 드는 것도 아니죠.
근데 가출한상황이 아니었다면 막 쓸 거를 가출해있으니까 돈이 많아도 불안해서 못 쓰고 아껴가며 썼지요.
컴백
그러다 37일 째 잡혔어요. 지나가다가 경찰이 오라고 해서. 엄마가 가출신고 했거든요. 엄마가 제 사진 줬대요. 저 신도시 사는데 신도시에서 일했으니까요.
-그 동네에서 일 했다구? 너네 집 동네에서?
헬멧 쓰고 일했으니까요. 우리 집에서 짜장면 주문 들어온 적 딱 한번 있었는데 제가 안 갔죠.
근데 잡혀서 은근히 기뻤죠. 가출하면 개고생이 딱 입니다. 까불지 말고 집에 있는 게 짱입니다. 엄마가 쫌 싫은 소리해도 한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되는 겁니다. 괜히 욱해서 나와 가지고 개고생 하는 것보다 훨씬 간편하고 좋죠.
집으로 돌아갈 때 돈이 남았죠. 110만원 정도. 아직도 엄마는 모르지요.
집에 와서 그냥 아무 말도 안하고 둘이 울었죠. 눈물 나죠. 힘들어서도 그렇고 미안해서도 그렇고. 그리고 완전 두 다리 쫙 뻗고 잤죠. 온종일.
그 후부터는 알바를 하게 됐죠. 집 들어와서부터는 제가 돈 안 받는다 했거든요. 미안해서.
-뭣하러!? 그 편한걸.
미안해서요…. 나름 죄송함의 표현이었죠.
<---------by Taekwonweirdo
-그 후의 알바는, 가출 때 했던 거랑 비교하면 어때?
알바와 직장은 전혀 다르죠. 알바는 쉬엄쉬엄 하는데 직장은 그렇게 못해요. 짤리면 안 되니까. 딴 데 가면 된다고 하지만 딴 데 자리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죠. 부담감이 확실히 다르죠. 가출했을 때는, 이게 내 일이 될 수도 있는 거니까……. 그쵸, 집을 영영 안 들어가면 이게 내 평생직장이 될 수도 있는 거죠. 정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죠. 그런 맘을 가지고 일을 견뎠죠.
지금은 너무 행복합니다. 완전 등 따시죠. 밥 아무 때나 먹을 수 있지요. 완전 다르죠.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금은 집이 너무 좋아요. 완전 집 좋아.
-친구가 가출한다면 너가 뜯어 말리겠다.
잡아왔죠. 한번 친구가 지 여자친구랑 가출했었는데 애들이랑 가서 잡아 왔죠. 사진 거의 50장 복사해서 50명이서 걔 잡으러 다녔죠. 오토바이 탈 줄 알고 오토바이 있는 애들로 모아서요. 근방에 배달하는 애들이나 그런 애들한테 사진 준거죠. 걔네 부모님이랑 좀 많이 친해서 나보고 도와달라고 부탁하셔서, 그 부탁 받고 딱 4일 걸렸죠. 걔 찾느라.
-친구가 엄청 원망했겠는데?
아니요…. 지도 얼떨결에 나갔던 거라 고마워합니다.
-그럼, 그 문제는? 그건 어떻게 됐어? 진로에 관해서 네 생각이 전혀 반영이 안 되고 무시되는 부분.
됐죠. 드디어 제가 배우고 싶은걸 배울 수 있게 됐죠.
-뭔데?
비밀입니다.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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